하네다공항 노숙 일기
두 달 남짓의 백수생활.. 막연한 여행의 꿈이 꿈틀꿈틀 대고 있었다.
그러던 2024년 12월의 어느 날.. 갑작스레 터진 계엄령은 막연한 꿈을 현실로 실행시켜줄 만한 좋은 구실이 되었다.
계엄령 덕분에 집에 있는 것이 불안하고, 더 이상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안전하다고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밖에서 들리는 두두두 소리만 들려도 또 헬기가 뜬 건 아닌지 내 심장은 두근거렸고, 불안하고 너무 무서웠다.
며칠 만에 급하게 항공편 티켓팅을 했고.. 정신 차려보니 내 몸은 공항을 향하고 있었다. 급하게 예약한 덕분에 항공편, 비행기 시간을 선택할 수 없었다.
■ 인천공항 → 하네다공항
· 출발: 12/10(화) 22:40 인천국제공항 T1
· 도착: 12/11(수) 00:50 하네다공항 T3
코로나 이후 몇 년 만의 해외여행이어서 들뜬 마음으로 아주 일찍 몇 시간 전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저녁도 든든히 챙겨 먹고 사람 구경을 했다. 늦은 시간이라 다행히 공항에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사진은 내 전전 타임 항공편 대기 줄이다. 이따가 어떻게 하면 더 빨리 수속을 할 수 있을지 뒤에서 유심히 사람들을 관찰했다. 수틀리지 말고 잘 따라 해야 하니까!!
저가항공에는 다 이유가 있었겠지?! 좌석이 다닥다닥.. 무서웠다. 보라색 커버가 끝이 없이 쭈~욱!! 정말 닭장 같은 분위기였다. 키 170cm이지만 골격은 크지 않은 내가 앉았을 때 앞좌석에 다리가 닿았다.
나는 2021년 3월 코로나 백신을 접종했다. 접종 당일부터 시작된 부작용은 몇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우측 상·하반신 근육통이 있는 터라 5분 간격으로 스트레칭해 줘야 하는데 자리가 좁아 스트레칭하는 것이 매우 불편했다.
(스포: 최근 보건소에 코로나 백신 접종 부작용 신청을 했다. 신청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 포스팅 예정)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른쪽이 통로여서 스트레칭 중 몸이 살짝살짝 나가도 괜찮았다는 것!!
원래는 돌아오는 비행기도 피치항공이었지만.. 두 시간 동안 또 불편하게 스트레칭하고 싶지 않아 대한항공으로 변경했다. 돈은 좀 들었지만 그래도 편안한 여행이 되었으니 그걸로 만족!!

피치항공에는 일본으로 돌아가는 일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나처럼 입국심사서를 작성하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한국 사람들만 성격 급한 줄 알았는데.. 비행기 착륙 멘트가 나오자 사람들이 무섭게 일어나서 줄을 섰다.
재미있는 건 앞좌석부터 차례대로 나간다. 앞좌석 사람이 수하물을 내리지 못하고 앉아있을 땐 뒷사람은 가지 않고 기다려준다. 그럴 거면 왜 먼저 일어나서 짐을 챙겼을까??

새벽시간 공항에 도착해서 그런지 출국장은 한산했다. 빠르게 빠르게~ 굿굿!!
폭풍 인터넷 검색으로 하네다공항 노숙이 안전하다는 정보를 가지고 1박은 공항에서 노숙을 계획했다.
빛의 속도로 내가 노숙할 수 있는 곳을 찾아봐야 했다. 여기저기 누워 자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캐리어를 끌고 지나가는 것이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최대한 시끄럽지 않게 캐리어를 살짝 들어 올려 끌었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노숙을 하고 있었다. 나는 식당층에서 노숙을 했고, 에스컬레이터 근처였지만 피곤해서인지 소음 따윈 가볍게 참고 버틸 수 있었다. 또 수시로 직원이 순찰을 했다. 그래서 더 안심하고 잠을 청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디든 본인이 편한 곳에서 노숙을 하면 된다. 며칠 뒤 천천히 하네다공항을 둘러보았는데 모든 층에서 사람들이 편하게 노숙을 하고 있었다.
내가 노숙을 했던 식당층 위층은 우주 공간 같은 분위기였다. 게임 공간도 있고.. 좀 특이한 분위기의 공간이었다.
그 층은 유독 기름부자?? 인도?? 그쪽 분들 생김새였는데.. 쳐다보는 눈빛이 기분 나빴다. 아니 기분 더러웠다!!
노숙을 할 땐 같은 인종이 있는 곳을 추천한다.



도착 후 배가 고팠다. 로손 편의점이 운영 중이었으며, 세븐일레븐은 운영시간 종료였다.
출국장 안쪽에 세븐일레븐은 운영 중이나 나는 벌써 출국장을 나와버렸으니 다시 들어갈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로손 에그샌드위치보다 세븐일레븐 에그샌드위치가 더 부드럽고 맛있다. 식빵 끝까지 속도 꽉 차 있다.
캐리어와 겉옷은 노숙할 자리에 그냥 놔두고 로손 편의점으로 향했다. 짐 훔쳐 가 봐야 캐리어에 돈 될만한 게 없었거든~
새벽시간 맨투맨 티셔츠 한 장과 백팩을 메고 공항을 누비고 다녔다. 공항은 매우 더웠고, 건조했다.
일어를 전혀 하지 못하지만 파파고로 모든 대화가 가능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일본인들이 한국어을 잘한다. 얼른 한국어가 세계 공통어가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일본은 디저트 왕국 같다. 참 잘 만들어~
시식을 권하는 직원을 뒤로한 채 출국 때 사 가겠다고 했지만.. 출국 날도 늦은 시간에 가보니 가게 문이 전부 닫혀있었다..

하네다공항 노숙 일기를 마치며..
내가 하네다공항 노숙을 도전할 수 있었던 동기부여는 몇 년 전 간사이공항에서 10시간 정도 에스컬레이터 아래 의자에서 자봤던 경험?? 덕분이다.
한여름 오사카는 습하고 너무너무 더웠다. 잠시 외출을 다녀와서 샤워하고, 또 외출하고 샤워하고 그렇게 무한 샤워를 했었다.
그래서 난 그 더위 뚫고 한낮에 공항까지 갈 자신이 없어 새벽시간 공항으로 이동해 시원한 공항에서 장시간 대기를 탔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짬!!

